다리를 다쳐 병원에 가다

저번 화요일에 근 일년간 벼르던 자전거를 사고, 무려 그 다음날 올림픽공원에 가서 브레이크 잡으며 타이어 미끄러뜨리고 놀다가 무릎을 다쳤다. 왼쪽 무릎부터 돌바닥에 떨어지는 순간 뭔가 무릎에서 ‘둑’하고… 숨이… 숨도 못 쉬게 아프더라. 생각보다 브레이크가 너무 잘 들었고, 자전거는 턱 하고 정지한 상태에서 나는 앞으로 투척된 것이다. 이런 짓 할 때는 당연히 보호대를 했어야 하는 것이고, 어쨌거나 변명의 여지가 없다. 아아 어리석은 자. 아아 어리석은 자.

한번 구른 자전거 주제에 거짓말처럼 말끔하다
한번 구른 자전거 주제에 거짓말처럼 말끔하다

한 10분정도 돌바닥에 누워서 스스로의 어리석음을 매우 탓하고 (정말로 매우 탓했다), 하늘이 노란색에서 회색으로 돌아올 때 쯤 슬슬 무릎을 만져보니 일단 뼈는 다 제자리에 있는 것 같더라. 빌빌대며 편의점에 가서 물 한 병 사다 마시고, 숨을 고르고, 슬슬슬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의외로 할 수 있더군.

체중을 다 실어서 돌바닥 상대로 레그드롭을 했으니 아픈게 당연한데, 사실 그 정도로 아프지가 않은게 일단 좀 기분이 묘하고 (물론 다행이긴 하지), 의자에 앉아 왼발을 들어올릴 때 이 기분나쁜, 무릎이 아래로 쭉 빠지는 느낌. 아는 게 병인지 뭔지 하여간 예전에 어쩌다 알게 된 십자인대파열과 증상이 비슷해서, 일단 다음날 병원에 가기로 하고 잤다.

다음날 (수요일) 아침에 소리도 못 지를만큼 무릎이 아팠던 건 어느정도 예상했던 일이고. 가까운 동네병원이 아산병원이다보니 일단 응급실로 걸어들어갔다(여긴 3차진료기관이라 응급이 아니면 초진은 불가능하다나).

그럼에도, 일단 다리를 뒤틀지만 않으면 별로 아프지도 않고, 걸어다닐만큼은 멀쩡하다. 응급실 가서 찍은 엑스레이에는 별 게 안 나온 것으로 보아 응급실 의사는 ‘잘 모르겠네에~’ 같은 소리를 하더니 고참 의사를 불러다가 ‘잘 모르겠다’는 소견을 다시금 확인받고 금요일에 일단 정형외과 내진을 잡는 것으로 일단락.

환자와 눈 맞추는 걸 지독히도 싫어하던 금요일의 의사는, 내가 소리를 지를 때 까지 무릎을 뒤틀어보더니 ‘원래 잘 모르는 것’이라는 소견을 발표한 뒤, 추가로 엑스레이 찍고 MRI 찍고 다음주에 또 만나요.

그날 추가로 찍은 엑스레이는 다리에 틀을 끼운 채 요가를 하며 찍는 것이라는 사실에 당황했고, (검사 처방전에는 어쩌구 저쩌구 stress radiograph 90 degree라던가 기타 등등…)

실제로는 본 자료사진보다 좀 더 공업적으로 생긴 형틀임
물론 웹에서 주워온 사진

MRI는 월요일에 찍었다. 비싸… 너무 비싸… 내 다리를 팔아도 안 나올 돈을 다리 MRI 찍는데 써 버렸지… 어리석은 자… 하지만 십자인대는 촉진이나 엑스레이로 확진이 안 나온다는 것도 아니까 무식을 무기로 시비도 못 걸겠어… 실로 어리석은 자… MRI 안내지에는 ‘9만원 현금으로 지참 (조영제)’라는 접수계 누님의 예쁜 글씨가 씌여있었지…

아무튼 무려 저녁 8시에 잡힌 검사 시각이 되어 나는 찜질방 까운을 입었고. 의사는 나를 묘한 방의 매우 좁고 매우 편안한 침대에 눕힌 뒤 ‘절대, 절대, 절대 움직이지 말라’고 했어. 그래놓고 못 움직이게 다리에 틀 끼우고 오른다리에는 모래주머니를 턱 턱 턱 얹고, 귀마개(!)를 씌운 뒤 어디론가 사라지더군. 그리고 침대가 움직이더니 다리가 기계에 들어간 뒤 뭔가 다양한 굉음이 울리는데, 느낌으로는 데이터 씨디를 오디오에 돌리는 소리 같은 게 뷐뷐뷐. 뷐뷐뷐.

아무튼, MRI 기계 있는 방을 보면, 왜 하우스나 ER같은 드라마 보면 뭔가 으스스하니 지하실 풍 아니던가. 헌데 이 아산병원 MR실은 뭐랄까, 좀 사우나? 찜질방? 러브호텔(쉬어만 가는)? 뭐 그런 느낌. 베이지색 벽지, 체리목 시트지 기둥마감, 주광색 삼파장 오스람 램프에다 조명 들어간 이발소 그림까지 있더군. 하긴 그 비싼 기계(십 수억 한다지)로 그 비싼 검사를 하는데 환자의 정신적 안정은 필수겠지. 그래도 차라리 어두운 편이 나을지도 모르지만.

뷐뷐뷐. 거 참. 푸코가 대단하긴 대단하지. 뷐뷐뷐. 결국 학교나 군대나 병원이나, 뷐뷐뷐, 인간들 말 듣게 만드는 건 공포란 말이지. 뷐뷐뷐. 학교에서야 말 안들으면 패고, 뷐뷐뷐, 안 패도 성적 안 나오면 내외에서 쓰레기 취급이니 공부해야지. 뷐뷐뷐. 군에서도 패고, 뷐뷐뷐, 안 패도 죽으나 사나 2년 넘게(요샌 2년이지) 갈굼당할 생각하니 기는 거지. 뷐뷐뷐. 병원에서야 패진 않지만, 뷐뷐뷐, 일단 의사 말 안들으면 건강해 질 수 없다잖아. 뷐뷐뷐. 어찌 보면 최강이지. 뷐뷐뷐. 쇠고기 수입해도 x되고 안 해도 x되고. 뷐뷐뷐. 조류독감은 이제 그냥 ‘닥치고 쫄아라’ 하는 셈이고. 뷐뷐뷐. 흡연자를 갈구지 않으면 당신도 흡연자라고 갈구질 않나. 뷐뷐뷐. 나도 떼돈 들여 이러고 있으니 뭔. 뷐뷐뷐. 하지만 많이 다친게 아니었으면 좋겠는데. 뷐뷐뷐.

귀마개 덕에 시끄럽지는 않았지만 도저히 잠을 잘 수는 없겠던 30분간, 꼼짝않고 누워있다가 일어나니 안녕히가시라고 하길래 집으로 왔다. 촬영전 3시간 금식이라길래 고분고분히 저녁을 굶었더니 (안 그러면 또 추가로 조영제값 9만원이 더 드는 수가 있었거든요) 매우 배가 고파서 작고 귀어운 맥주를 사들고 들어갔다.

이제 이번 주 금요일에 또 그 대인공포증 의사한테 가야한다. 이제는 말할 수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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