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sassin’s Creed

며칠 전 Assassin’s Creed PC판 Director’s Cut 엔딩을 보았다. 일단 스토리 및 미션 관련 요소들은 다 봤고, 깃발 모으기는 좀 해 보다가 이걸 100% 채우려면 인생 말릴 것을 직감하고 신속히 그만 두었다. 이하 스포일러는 가려두었다.

1. 개괄

기본적으로는 요새 잘 나가는 3인칭 3D 액션 게임이다. 광고용 장르구분 하 정확히 ‘스타일리쉬 잠입액션’으로 요약된다. PS3와 XB360으로 2007년 11월에 발매되었는데, 2008년 4월 25일 현재 6백만장을 팔았다는 모양이다. PC판은 미국에서 4월 8일에 나왔다.

이름은 좀 들어 봤지만 6백만이나 팔린 것일 줄은 모르고 얼떨결에 산 게임이다. 5월 중순에 어디서 본 듯한 게임이 PC판으로 나와있길래 언제 나왔냐고 점원에게 물은 결과 ‘한 3일 됐어요’ 하고, 대뜸 ‘사양은 되는지 확인 하셨나요’ 하던데. 패키지와 매뉴얼은 한글화 되었지만 내용은 영문판 DVD 1장.

2. 외적 시스템

사양은 센 편이다. 내 경우 그래픽카드는 최근에 바꿔서 문제 없었지만 패키지 사양에 비해 CPU가 딸렸다. 결과적으로 게임 진행은 매끄러웠는데, 워낙 콘솔틱하게 화면효과를 왕창 먹여놓은 그래픽이라 세부사양 조정은 큰 의미가 없어 보였기에 기본 설정으로 진행했다. 전체 게임에서 단 한번 버벅였는데 그게 사양 문제인지는 의문이다. CPU가 좋았다면 로딩이 좀 빨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은 든다.

조작의 경우, PC게임만 하는 나 같은 인간들은 대다수의 3D 액션게임에서 키보드+마우스가 가장 편하다. 헌데 이 게임의 키보드+마우스 조작은 좀 배려가 없다. 엑박이나 PS용 패드로 하는 게 직관적인데다가 게임의 의도에도 잘 맞는다. 마우스를 쓰면 시선 조정이 정밀해지지만 평상시의 걸음걸이 속도를 조절할 수가 없다.

3. 내적 시스템

멋들어진 오프닝이 기본적인 진행을 보여준다. 도시에 들어가 암살대상을 관찰하고, 대상을 중인 환시리에 암살한 뒤, 사라진다… 본 게임 화면의 첫 인상은, 이전 UBIsoft에서 나온 페르시아의 왕자를 기초로 또 비슷한 걸 만든건가 하는 느낌이 강하다. 하지만 조작시스템은 제법 다르다.

네개의 버튼에 머리, 오른손, 왼손, 발을 할당한다. 기본적으로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저자세. 액션키를 누른 상태에서는 사회적으로 용인되지 않는 고자세. 숨는다는 것은 보이지 않게 구석에 박혀있는 것이 아니라 길거리의 흐름에 동화되는 것이며, 그것에만 성공한다면 백주 대낮에 사람을 죽여도 주위에서는 그저 누가 누구랑 부딛혔나보다 하는 정도로 넘어간다. 의심받지 않게 그 자리를 떠나면 그만이다. 지붕 위로 올라가면 시선을 피해 핑핑 날아다니다가, 방해자가 보이면 그 뒤로 돌아 조용히 찌른다. 단서를 모으고 대상이 나타날 자리를 보며 궁리를 거듭해서 가장 빠르고 조용하게 목적을 암살할 계획을 짠다…

이 게임에는 밤이 없다. 항상 대낮이며 흐린 느낌이 들 때도 있지만 비는 오지 않는다. 이건 무엇보다도 설정 때문이라고 생각하는데, 주인공 알타이르는 암살자이긴 해도 암살교단 (게임 내에서는 Assassin’s Order라 하는데, 아마도 ‘하샤신파’ 라든가 ‘산노인’이라 불리웠던 그 집단) 소속이고, 그들에게 있어서 암살은 공공연한 정치행위이기도 하다. 중간의 잔챙이는 몰라도, 진짜 최종 목표물은 조용히 죽이되 뒤통수를 치면 안되고 중인 환시리에 모두가 알 수 있도록 죽여야 하는 것이다… 모두 알도록 몰래 죽여야 한다니, 내가 무슨 소리를 하는건지 나도 모르겠지만…

아무튼, 뭔가 멋지잖아! 꽤 참신하고. 그래픽도 아름답고, 다마스커스, 아카, 예루살렘 따위 지명에 뽕 먹는 나같은 놈으로서는 그 길거리를 달리는 기분(시티투어!)도 째진다. 캐릭터 움직임도 좋고 게임의 전체적인 색감에 엄청나게 신경쓴 흔적이 보인다.

헌데 인공지능이 웃겨서 좀 덜 멋져지고, 이후 액션을 되풀이하다 보면, 질린다. 갈수록 어려워지긴 해도, 기본적인 볼 거리, 할 거리 요소는 초반에 다 나온다. 후반부는 되풀이라는 느낌이 너무 강하다.

4. 줄거리

덜 질리려면 스토리에 확실히 몰입해야할텐데, 흥미로운 줄거리지만 그 분위기를 타려면 노력이 필요하고, 보통의 가상역사물이 그러하듯이 역사적 배경을 조금은 아는 편이 더 재미있다. 언어장벽도 큰 문제겠지만 PS3판은 완전 한글화가 되어서 나온다던데, 아무튼 게임 내에 자막은 없다. 미국 청각장애인협회 홈페이지에서 엄청난 불만이 쏟아지고 있더구만.

한편, 액자식 구성이다. 주인공은 거대 기업에 납치당해 기계 속에 들어가게 된다. 유전자에 각인된 선조의 기억을 더듬는 기계 속에서, 그는 천년 전 과거에 자신의 조상이 손에 넣었던 무언가를 찾아 내야만 한다. 안 그러면, 기업은 주인공을 살려 둘 이유가 없다…

그러니까 주인공은 게임 내에서 또 다시 모종의 게임시뮬레이터에 들어간다. 스토리는, 초거대 기업이 사실상 세계패권을 장악한 2012년과 3차십자군이 한창인 1191년이 이중적으로 진행된다. 이런 설정이라 게임 초반에는 정말 가슴 졸이며 암살 시도를 하지만 나중이 되면 뭐, 실패한다고 죽는 것도 아니고… 여기 리로딩 해줘요. 하는 분위기가 된다. 게임이란 그 자체로 액자의 성격이 강하다 보니 액자식 구성의 게임은 좀 맥이 많이 빠진다. 그 덕에 어떤 리얼리티는 생기지만, 글쎄.

그런데 액자 내부 스토리에서 조금 웃기는 부분이랄까, 아무튼 스토리 종반의 결판 부분에 ‘액션게임으로서 보스전’을 정당화하는 방법 치고는 제법 참신한 요소가 있다.

(나중에 그 뒤가 더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지만) 막판에, 성당기사단 단장 로베르 드 사블은 암살교단을 아주 없애버리기 위해서 십자군과 사라센 모두를 암살교단의 적으로 만들고자 한다. 곧 리차드 1세와 살라딘 모두를 설득해서 암살교단을 공격하게끔 하려는 것이다.

주인공인 알타이르는 전쟁터 한 복판을 헤치고 들어가 로베르 드 사블과 리차드 1세 및 그 참모들이 모인 십자군들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려 든다. 사자왕인지 뭔지 몰라도 리차드, 당신은 속고 있으며 로베르 이놈은 비밀리에 기독교와 이슬람, 나아가 모든 인간을 지배하려는 야욕을 품고 있다. 암살교단을 적으로 돌리는 것은 성당기사단의 코를 당신이 대신 풀어주는 것 밖에 안된다…

물론 로베르는 리차드 1세 옆에 서서 콧방귀를 뀐다. 폐하 저딴 놈 말을 믿으십니까, 아니면 언제나 충성스럽고 신심깊은 이 성당기사단 단장을 믿으십니까…

그랬더니 사자왕 하는 말이, 뭐가 이리 복잡해. 몰라. 둘이 싸워 봐. 하나님이 지켜주는 놈이 이기겠지 뭐.

겨… 결투재판… 니네 하느님 맙소사…

아무튼 그 뒤로 약 20대 1의 다구리판이 시작되길래 심히 당황했지만, 상대는 십자군이란 걸 잠시 잊었던 내가 순진했던 거겠지.

5. 총평

콘솔에는 별로 관심이 없어서 이 게임이 얼마나 대단한 게임인지 몰랐고, 그러다 보니 큰 기대 안하고 시작했을 때는 대단한 게임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헌데 이게 600만장 팔렸다는 데는 좀 납득이 가질 않는다. 역시 콘솔게임 특유의 갇힌 느낌(뒤집어 말하면 매끈하다는 뜻도 되지만)은 취향에 안 맞는 모양이다.

분명히 ‘요새 게임’으로서 화려하고, 돈 많이 들여서 잘 만든 헐리우드 액션물이 줄 수 있는 즐거움을 확실히 준다. 그러니 나 같은 경우 그런 영화 볼 시간에 이 게임을 하는 편이 낫다. 하지만 걸작이나 명작은 못 되고, 특별한 충격은 없었던 것 같다. UBIsoft는 이미 페르시아의 왕자 시리즈에서 이 스타일이 줄 수 있는 충격을 효과적으로 써먹었다. 결론적으로 이 게임은 내적으로도, 다른 게임과의 연관성 면에서도 좀 질리는 면이 있다. 이 게임에 뽕먹은 왠 외국 양아치가 팔뚝에 게임 로고를 문신까지 했던데, 아마 반년 지나면 후회막심 아닐까.

게임화면과 연출 등등은 애초부터 와이드스크린을 상정하고 만들어놓았다. 한 40인치쯤 되는 LCD TV화면에 걸어놓고 소리 둥둥 울리며 해 보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았다. 만약에 그랬다면 이 게임의 평가는 확 올라갔을수도 있다. 그러한 게임이란 말씀. 아무튼 누가 해 본다고 해도 말리지는 않을 것이고, 게임에 익숙치 않은 친구들 상대로는 혼을 쏙 빼놓을 수 있을 정도의 완성도가 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권장사양에 스크린 크기를 적는 게임도 나오지 싶다.

PS. 앞으로 몇 개나 쓰게 될지 모르겠지만 일단 게임 리뷰라는 걸 쓰는 이상 관점이라는 게 있어야 할거라 생각하였다. 이전부터 나름대로 게임을 평가할 때 어떤 기준이 적당할까 생각해 보았는데, 일단은 아래와 같다.

  1. 개괄: 이건 게임의 물리적인 형태와 함께 사회적인 관점에서 볼 때 이 게임이 위치한 좌표와 맥락을 말한다. 내 리뷰 내에서 유일하게 좀 객관적이라 할 수 있는 부분일게다.
  2. 외적 시스템: 게임 시스템과 게임 외부간의 상호작용에 관한 이야기이다. 하드웨어 사양과 조작 따위.
  3. 내적 시스템: 게임의 내부체계와 내부논리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래픽과 사운드는 시스템의 일부로 본다.
  4. 스토리: 내러티브가 있는 게임의 경우 그게 이래서 좋다, 저래서 나빴다 정도를 이야기하는 부분이다. 내러티브가 없는 게임이라면 그 밖에 그 게임에 몰입하게 하는 요소를 놓고 이야기하게 될 것이다.
  5. 총평: 종합적인 평가. 특색.

써 놓고 보니 뭐 이리 거창하냐…

꽤 오랫동안 생각하던 것이라 좀 이상해져 버렸지만 실제 내용은 본문과 같은 수준이다. 분류학이나 계통학이란 것이, 그것에 너무 신경을 쓰다 보면 정작 그 분류나 계통에 담길 내용이 문제가 아니라 ‘세계를 재정의한다’는 황당한 과제를 끌어안게 되기 십상이다. 그러니까 기준은 기준이고, 틀이 좀 깨진대도 내용 있는 글을 쓰는게 최우선일거다.

감상, 게임 에 올린 글 태그됨: , , , , ,
3 comments on “Assassin’s Creed
  1. ScrapHeap말하길

    사자왕 아싸.

    혹시 600만장이라는 숫자는 시장의 확대를 보여주는 거 아닐까?

  2. GB말하길

    음…콘만도스 크리드라는 평이 나오는 부분은 어디일까요?
    ‘굳이 암살할 필요가 없다’는 평도 좀 들려오는지라 ^^;

  3. WoKi말하길

    SH//
    시장의 확대, 분명히 그 말도 맞지만 UBIsoft 역시 ‘기대 이상’이라는 반응인가봐. 아무튼 플스, 엑박, PC 버전을 모조리 낸 영향도 있을거라. 곧 NDS판도 나온다던데?
    GB//
    후반에 긴장도가 떨어져버리는 게 자네가 들은 평 때문이기도 하네. 처음에는 분위기 휩쓸려서 조용조용히 죽이지만, 나중에는 배 째고 다 뎀벼 식으로 싸우게 되기 십상이거든. 그렇게 다 죽여도 아무튼 고민 해결이니까.
    갈수록 난이도를 올리려다 보니 경비병의 숫자를 늘릴 수 밖에 없었겠지만, 목표 암살하고 주위를 둘러봤더니 경비병 30명 정도가 둘러싸고 있길래 낄낄대면서 다 죽인 적도 있어(화면 끊기더라)… 기획 의도대로라면 도망가야겠지만… 이쯤 되면 암살도 아니지.

GB 에 응답 남기기 응답 취소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

*

다음의 HTML 태그와 속성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a href="" title=""> <abbr title=""> <acronym title=""> <b> <blockquote cite=""> <cite> <code> <del datetime=""> <em> <i> <q cite=""> <strike> <stro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