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생의 대화

 저번 일요일 낮에 주택가를 지나갈 일이 있었다. 초등학생 둘이 내 곁을 지나가고 있었다. 둘 다 키는 비슷했고 110이 좀 넘는 정도였다.

 하나는 남자애로, 바지와 상의의 팔 부분은 파란색에다 몸통부분은 하늘색인 전형적인 초등학교 체육복 차림이었다. 머리는 긴 상고머리라고 하나, 바가지 머리 비슷한데 좀 짧은 모양이었고 검은 뿔테안경을 쓰고 있었다. 왼손에는 노란색 미술학원 가방을 들고, 오른손에는 여남은장의 유희왕 카드를 들었는데 걷는 도중에 카드에서 한 번도 시선을 떼지 않았다. 흰색 계통의 뭔가 만화 캐릭터가 들어간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

 또 하나는 여자애였는데, 어깨정도까지 오는 파마머리를 머리 양 옆에서 빨간 방울고무줄로 묶고 있었다. 팔은 빨간색이고 몸통은 녹색인 야구잠바를 입고 있었고, 고동색 골덴 8부바지와 흰 양말에 분홍색 구두 차림이었다. 오른쪽 어깨에서 왼쪽 옆구리로 엇걸어 맨 빨간색 보습학원 가방을 매고 있었는데, 줄곧 땅바닥을 내려다보며 걷고 있었다. 여자애 오른쪽으로 남자애가 나란히 걷고 있었고, 여자애는 계속 뒷짐을 지고 있었다.

 그러니까, 그림으로 그린듯한, 전형적인 초딩 둘이었던 것이다. 다음은 그들의 대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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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 …그러면 30% 확률로 그 애가 그 여자애를 좋아한다고 할 수 있겠네.

 녀: 너 지금 이 사랑이 깨졌다고 말하는 거야?

 남: 그저 내 생각이 그렇다는거지.

 녀: 정말로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거야?

 남: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도 아니니까.

 녀: …지금 네가 거짓말을 한다면, 나는 네가 거짓말을 하는 이유까지도 알 것 같은데?

 남: 맘대로 생각해. 나는 그냥…

 녀: 너 아직도 나 좋아하니?

 남: 그건 끝났어. 착각하지 마.

 녀: … 믿어줄께. 그렇다고 치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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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뒤로 두 사람은 길가의 아파트단지 진입로로 들어갔기에 이후의 대화는 듣지 못했다. 그때 나는 방금 대화를 나눈 둘이 분명 초등학생이었다는 사실을 그들의 뒷모습에서 확인하며 잠시 당황했다.

 역시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치한 집단은 국회의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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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comments on “초등학생의 대화
  1. GB말하길

    이걸 읽어주니까 ‘우와…요즘 애들이 쩌는구나…’ 하고 7살 아래의 제 동생이 말하는데 말이지요…;

    그런데 체육복 입은 초딩이나 양복 입은 국회의원이나 말과 복장의 일치가 되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가히 호각을 다툴만 한 것 같다는 생각이 물컹물컹 거리네요.

    아…그러고 보니 둘의 이미지가 바닥을 친다는 점도 같을지도… :D

  2. WoKi말하길

    둘이 비슷해 보이는 건, 둘 다 자기가 저지르는 일이 부끄러운 줄 모른다는 것 때문 아니겠냐.
    딴에는 다들 할 말이 있겠지만.

    그래도 난데없이 찍힌 낙인이라는 점에서 초딩이 억울하지.

    초딩은 초딩이 될 수 밖에 없으니까 초딩이 되었지만,
    국회의원은 국회의원좀 해 보겠다고 별 짓을 다 해서 그 자리에 앉은거니까.

    게다가 초딩한테는 ‘발전 가능성’이라든가 ‘개선의 여지’가 있잖아. 양복데기들한테는 그런 게 없거든.

  3. ScrapHeap말하길

    좀 쩔어주는 건지, 전사회적 연애중독의 증상인지 뭐. ‘ㅁ';

  4. WoKi말하길

    난 그 ‘쩐다’는 말이 아직도 좀 파악이 안 되더라구.
    친구놈은 ‘거 한국인이면 감이 팍 오는 말 아냐?’하던데, 이거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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