江湖仁義嘆

중원이라하여 모두 광명과 정대에 의해 다스려지는 것이 아니오, 강호라 하여 모두 무법과 위력만이 판을 치는 곳은 아니라는 따위의 말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근래 중원의 인심이 척박하고 사나워지는 와중에, 자칭 선량한 중원의 장삼이사가, 강호에 몸 담은 모든 인간 종자는 자살충동에 휩싸인 의도적 살인자요 대량학살자인 양 취급하는 것에 대해서 할 말은 많으나 여기서 그에 대해 왈가왈부할 생각도 아니다. 다만 그 문제에 대해서는 되어가는 대로 일단 내버려 두는 것 이외에 강호의 일원으로서 뾰족히 취할 행동은 없지 않은가 하는 생각 뿐이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강호 협사란 외도(外道). 한편으로 중원의 군세에 압박당하고 다른 한편으로 그들의 정도(正道)를 앞세운 언설에 강호의 협사들이 설 자리를 잃어간대도 그에 대해 이를 악물고 야멸찬 바람이 지나가길 기다릴 일이지, 섣불리 반기를 들어 강호의 협기가 중원의 정리(正理)에 앞서느니, 어쩌니 혀를 세우고 칼을 벼려보아야 허망에 허망을 더하는 허허망망한 일일 뿐이다. 그저 생각건대 강호없는 중원이 어디있겠는가. 지금의 강호가 사라지면 중원의 위정자들은 또다시 제 안팎에서 강호를 찾아 ‘보라, 저것이 강호협도다. 저들이 죽기를 겁낼 줄 모르며 아무나 죽이는 자들이다’ 하여 핍박할 것이 불 보듯 뻔함은 우키 혼자만의 생각이 아닐지라.

허나 과연 오늘날 강호 끽협은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섬겨 살려 하는 것인가. 어제 우키는 왼 무릎의 고질 탓에 의원에 갔다가 흑의정장을 한 두 젊은 협사로부터 ‘외람된 말씀이오나 두 대의 연초를 풀어 두 젊은이의 숙원을 풀어줍시사’하는 청를 받은 바 되었다. 강호의 도가 당연히 그러한 것인 바 본협은 쾌히 연초의 곽을 열어 두 협사의 청에 응하려 한 즉, 아뿔싸, 공교롭게도 그 안에 있던 것은 외로이 공곽을 지키던 한 줄기 돗대 뿐이었던 것이다.

‘허허. 돗대로군요.’하자 한 협사 왈, ‘아아! 실로 감읍(感泣), 감읍!’하며 본협의 돗대를 취하여 유유히 사라졌으니.

우키는 말한다.

젊은 협사의 간절한 마음과 공손한 예절 무시할 바 아니나 돗대를 취한 협사는 두 개의 과(過)를 범하였도다. 하나는 모름지기 협자된 이가 타 협의 돗대만큼은 취하지 않는다는 인(仁)을 저버린 것으로 이는 작은 과오라 할 것이나, 또 하나는 대동한 흑의사제에게 돌아갈 연초가 없음을 알면서도 찰나의 끽욕에 눈이 멀어 스스로 피울 한 대의 연초를 취함으로 만족하고 사제의 핍난을 저버려 의(義)를 훼기한 것으로 이야말로 큰 과오라. 대저 강호 끽협의 도리란 연초가 모자랄 때 그 진정한 빛을 발하는 것이니, 설령 본협에게 남은 것이 돗대 뿐이라 하더라도 나를 죽여 더 큰 인을 이룬다는 뜻에 따라 본협은 그러한 돗대 쯤 궁한 끽협에게 쾌척함을 신조로 삼는 바이다. 허나 기 협사의 사제를 돌볼줄 모름은 어이한 일인가. 다 큰 양복데기 둘이서 설마 주차장에 숨어 한 대를 돌려 피우기라도 할 셈인가. 이건 뭐 고삐리도 아니고, 그런 사이로 보이진 않았는데 말이야. 정말로 돗대 하나 남은거 준 게 억울한 건 아니야. 난 그냥 담배 가져간 놈 옆에 선 나머지 한 녀석이 너무 우울한 얼굴을 하고 있어서 그게 좀 짠했던 것 뿐이야. 정말이야.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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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comments on “江湖仁義嘆
  1. ScrapHeap말하길

    어휴 짠.

  2. WoKi말하길

    어. 공감하는건가. 거 되게 짠하데.

  3. ScrapHeap말하길

    그야 나도 (자진검열)이잖아.

  4. GB말하길

    돗대라고 하면 참 찔리는 일이 있어요.

    게씨한테 언제나 미안하게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담배를 사줄 수도 없는 노릇 아니겠습니까…

  5. WoKi말하길

    뭐 자네가 스스로 찔리는 것 정도면, 그 정도 과오에 대해 도리는 다 한거 아니겠어?
    그 잘못은 크지 않아… 아마… 뭐 그렇다고 생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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