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이야기 넷 – 기묘한 부가(部歌)

어거지로 만든 농담같은 이야기지만, 모 남자고등학교 브라스 밴드부의 부가(部歌) 가사는 다음과 같다.

언젠가 만나본 그 여학생
빵긋이 웃어준 그 얼굴(그 얼굴)
사랑과 미소가 너엄치는
정열에 불타는 눈동자(아-아-)

아 왜 내마음 설레일까
빵긋이 웃어준 그 얼굴(그 얼굴)
언젠가 만나본 그 모습이
지금도 눈 앞에 삼삼해(애-애-)

이 곡은 박수로 박자를 맞추며 부르는 군가풍 단순 뽕짝 발라드지만, 나름 2부 화성곡으로서, 고음부와 저음부가 “아 왜 내마음 설레일까”부분에서(만) 나뉘어진다. 전통적으로 목관파트가 고음부, 금관파트가 저음부를 부르며, 이것은 모름지기 전통이므로 이유는 잘 알 수 없다. 남자는 금관! 이라는 편견이 어느 정도 저 전통에 영향을 미친것인지 확인할 방법은 없으나, 내가 보기에는, 전적으로, 그 따위 이유가 전부일 것으로 보인다. (정확히 말하자면 코러스도 파트가 나뉘는데, 코러스는 부르고 싶은 놈들만 부르게 되어있다는 기괴한 전통에 따른다)

한편, 이 곡은 고교 브라스 밴드부의 부가지만, 동 밴드부는 이 곡을 연주하지 못한다. 사람의 기도와 주둥이는 각각 하나씩이기 때문에, 노래를 하거나 관악기를 불거나 둘 중 하나밖에 못하는 게 원칙이다. 그리고 당연히, 부가를 부를 땐 부원 모두가 함께 (밀리터리한 박수를 치며) 부르게 되어있고, 누군가 잘난체하며, 남들 노래부를 때 악기를 불어대어 가상의 청자인 “그 여학생”의 시선을 독점하는 사태를 고등학생 원숭이들이 용납하는 일은 없는 것이다 – 부가 제창시 유일하게 연주되는 악기는 단조롭게 2분박을 툭툭 쳐주는 스네어 드럼 뿐이다. 드럼 주자는 그것만으로도 뭇 원숭이들의 질시를 살며시 받는다. SKY 지향, 비평준화, 지방 (자칭 명문) 남자 고등학교에서 통하는 원칙이란 오로지 쇠와 피인 것이다. 거기 더한다면 각목 정도가 있을 것이다.

나름 고증을 시도해 보았으나 이 곡을 언제, 누가 만든 것인지, 따로 원전이 있는 것인지 등등에 대해 밝혀낸 바는 없다. 단, 고음부와 저음부를 나눈 것은 적어도 1990년대 초반 즈음의 일로 여겨진다. 당시 당 고등학교의 존 레논하고 폴 메카트니를 애매하게 닮은 음악선생(그 또한 당 고등학교 밴드부 올드보이다)이 그 작업을 하였다(고 한다). 지금 그가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는 캐 보지 않아서 잘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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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comments on “옛날이야기 넷 – 기묘한 부가(部歌)
  1. GB말하길

    아아…몰랐어요.

    밴드부에 부가가 있었다는 것도, 부가가 이런 가사였다는 것도.
    가사가 하도 심란해서 리듬과 멜로디는 상상도 할 수 없습니다.

    여러가지 의미에서 ‘어두메 다크’ 수준의 컬쳐쇼크네요.

  2. ScrapHeap말하길

    이거 들은 적 있는데…
    아무튼 녹음해서 올리는거야!

  3. WoKi말하길

    실제로 들어보면 이 뭐랄까, 일말의 동정심과 더불어 그걸 압도하는 허탈감이 느껴지는 곡임.
    심각한 듯 조잡하고, 웃자고 하는 일 치곤 너무 강박적이란 말이야.

    그나저나 이걸 어떻게 녹음하란말이냐. 가서 불러달라고 할 수도 없고.
    내가 불러서 녹음한다든가 하는 징한 짓은 차마 할 수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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