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잊혀질 수많은 일들

저번 화요일, 2010년 10월 26일에 한 은인의 부고를 들었다. 나에게 그 사실을 전해 준 이는, 자기도 자세한 사정을 알지 못하지만 우리의 은인이 어제(그러니까 10월 25일) 자살했음을 내게 알렸고, 이 사건에 대해 슬퍼해야 마땅할 사람들을 모아 은인의 장례에 참석할 뜻을 비쳤다. 나 또한 슬퍼해야 마땅한 사람에 속하지만,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달리 끼워넣을 틈이 없음을 알고 있으니 장례에 참석하지 않아도 이해한다는 요지의 말을 했다.

나는 그러한 그의 이해에 고맙다고 답했으며, 어쨌거나 몸을 뺄 수 없는 지금의 상황이 한탄스럽다는 말을 했다. 미안하다고도 했다. 초상집 잘 다녀오라고 하고 전화를 끊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하면 ‘내 대신 부의금 얼마라도 내 주고, 네 계좌번호 불러라’고 말했어야 옳지만, 당시 전화를 받고 생각나는 말은 그것이 전부였다. 세간의 마땅한 행동거지를 반사적으로 떠올릴 만큼 노련하지 못했는데, 그 은인의 자살에 진심으로 당황했기 때문인 것 같다.

장례에 참석할 수 없는 상황이 안타까웠던 것은 사실이고, 할 수 있는 일이 얼마 없음이 아쉬웠던 것도 사실이지만, 또한 부의금을 전해달라고 그에게 말하지 못했던 나의 당황에 스스로 부끄러움을 느끼는 것도 사실이지만, 이번 일을 맞아 내가 하고 있는 모든 일을 제쳐놓고 달려갈 마음까지는 들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죽은 은인에 대한 많은 기억과 감사하는 마음은 있으나, 거기까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니 그렇거나 말거나, 나는 10월 25일을 기억해야 하며, 은인이 결국 자살하였다는 사실에 대해 오랫동안 곱씹을 필요가 있다고 느낀다. 그리고 여전히 당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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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이야기 넷 – 기묘한 부가(部歌)

어거지로 만든 농담같은 이야기지만, 모 남자고등학교 브라스 밴드부의 부가(部歌) 가사는 다음과 같다.

언젠가 만나본 그 여학생
빵긋이 웃어준 그 얼굴(그 얼굴)
사랑과 미소가 너엄치는
정열에 불타는 눈동자(아-아-)

아 왜 내마음 설레일까
빵긋이 웃어준 그 얼굴(그 얼굴)
언젠가 만나본 그 모습이
지금도 눈 앞에 삼삼해(애-애-)

이 곡은 박수로 박자를 맞추며 부르는 군가풍 단순 뽕짝 발라드지만, 나름 2부 화성곡으로서, 고음부와 저음부가 “아 왜 내마음 설레일까”부분에서(만) 나뉘어진다. 전통적으로 목관파트가 고음부, 금관파트가 저음부를 부르며, 이것은 모름지기 전통이므로 이유는 잘 알 수 없다. 남자는 금관! 이라는 편견이 어느 정도 저 전통에 영향을 미친것인지 확인할 방법은 없으나, 내가 보기에는, 전적으로, 그 따위 이유가 전부일 것으로 보인다. (정확히 말하자면 코러스도 파트가 나뉘는데, 코러스는 부르고 싶은 놈들만 부르게 되어있다는 기괴한 전통에 따른다)

한편, 이 곡은 고교 브라스 밴드부의 부가지만, 동 밴드부는 이 곡을 연주하지 못한다. 사람의 기도와 주둥이는 각각 하나씩이기 때문에, 노래를 하거나 관악기를 불거나 둘 중 하나밖에 못하는 게 원칙이다. 그리고 당연히, 부가를 부를 땐 부원 모두가 함께 (밀리터리한 박수를 치며) 부르게 되어있고, 누군가 잘난체하며, 남들 노래부를 때 악기를 불어대어 가상의 청자인 “그 여학생”의 시선을 독점하는 사태를 고등학생 원숭이들이 용납하는 일은 없는 것이다 – 부가 제창시 유일하게 연주되는 악기는 단조롭게 2분박을 툭툭 쳐주는 스네어 드럼 뿐이다. 드럼 주자는 그것만으로도 뭇 원숭이들의 질시를 살며시 받는다. SKY 지향, 비평준화, 지방 (자칭 명문) 남자 고등학교에서 통하는 원칙이란 오로지 쇠와 피인 것이다. 거기 더한다면 각목 정도가 있을 것이다.

나름 고증을 시도해 보았으나 이 곡을 언제, 누가 만든 것인지, 따로 원전이 있는 것인지 등등에 대해 밝혀낸 바는 없다. 단, 고음부와 저음부를 나눈 것은 적어도 1990년대 초반 즈음의 일로 여겨진다. 당시 당 고등학교의 존 레논하고 폴 메카트니를 애매하게 닮은 음악선생(그 또한 당 고등학교 밴드부 올드보이다)이 그 작업을 하였다(고 한다). 지금 그가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는 캐 보지 않아서 잘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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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노무현답게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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