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이야기 하나 – 황소개구리

아마 구십년대 중후반 이야기라 한다. 식용 황소개구리가 농가 소득에 도움이 된다든가 어떻다든가 하는 이야기가 잠깐 돌다가, 곧, 망한 황소개구리 농장에서 놈들이 개천으로 탈출하여 청개구리도 잡아먹고 두꺼비도 먹고 허약한 뱀도 잡아먹고 참새까지 잡아 먹어서 난리라는 뉴스가 나오기 시작하던 때의 일이다. 그러니까 아주 옛날 이야기도 아니지.

장소 역시 아주 시골이라 하기는 좀 뭣한 시골이 배경인데, 논 있고 밭도 있고 닭 치고 돼지도 있고 소도 좀 있고 개 많고 포도밭도 있는 동네지만 차 타고 이삼십분 쯤 가면 시내 버스 터미널 나오는 그런 정도의 시골이다. 뭐 우리나라 도농 배치라는게 아주 ‘깡촌’이라는 건 말이야 쉽지 어지간한 산 속이 아니고서야 좀 가다 보면 어디든 읍내든 시내든 하나는 금방 나오기 마련이니까. 아무튼 개천도 있고, 개천 옆에는 뚝방도 있고, 이 이야기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연못도 큼지막하게 하나 있는 동네다.

제법 큰 연못인데다, 연못 답게도 철이 되면 연 이파리가 올라오고 연꽃도 많이 피는 괜찮은 연못이다. 마침 여름도 한창이라서 연꽃 참 탐스럽고 좋을 때다. 그렇긴 해도 아직 ‘주5일제’라는 말을 들으면 프랑스에선 그런다고 하더라, 아니 독일인가? 하던 시절이었고, 요새처럼 경치 좀 괜찮다 싶은 곳 마다 대포만한 카메라 들고 다니면서 사진 찍는 찍사들 천지였던 시절도 아니라서, 연못 좋대도, 조용한 게, 일단은 그저 식당 하나 있는 정도고, 어쨌든 연못 배경으로 차나 한 잔 하러 오는 선남선녀 혹은 불륜남불륜녀가 먹여 살리는 찻집이 있고, 정자도 하나 있다.

그 정자 말인데, 연못이니까 당연히 정자가 있다. 그러면 당연히 할아버지 할머니도 있다. 시골이니까 할아버지 할머니만 있다. 많다. 할랑한 도회지 애들이야 더운 여름날 땡볕 피해 정자 그늘에서 부채 부치며 시원하게 수박 먹는 할아버지 할머니들 그림이나 그리고들 있겠지만, 애매한 시골이래도 시골은 시골이고, 대낮에는 당연히 농사지어야지 할아버지 할머니들 놀 처지가 못 된다. 누가 수박 사다 준 적도 없고.

게다가 연못가 정자라는 게 여름에는 밤에 가는 것도 제맛이다. 제맛이건 아니건 심심하니까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밤마실을 가신다. 가 보면 소주가 있거나 막걸리가 있거나 둘 다 있거나 없거나 한데, 적어도 낮에 본 영감들, 할매들, 밤에 거기 있을 건 확실하다. 경우에 따라선 수박이 있을 수도 있다.

어쨌든 안 가면 집에서 뭐 할건가? 도시에서 아들 딸들 돈 벌었다고, 후진 집 헐고 부모님 번듯한 집에 사시라고 지어주는 집이라는 게 태반이 조립식 건물들이라, 보기에는 허옇고 번듯하고 그럴싸한지 어떤지 몰라도 가을에 바람들고 겨울에 춥고 봄에는 기우뚱거리고 여름에는 덥다. 그래도 자식이 돈 쳐들여 해준 것이라 참말로 기특하고 흐뭇하고 어깨도 으쓱하고 고마운 일이지만 일 년 지내보면, 별로 안 고맙지.

그래서 일흔 몇살이셨대드라, 아들 자식이 두 놈이나 서울에 있다던가 뭐라던가, 하여간 그 할아버지가 밤마실을 나오셨다. 모자 쓰고 부채 들고 뒷짐 지고 정자로 간다. 맨날 만날 다니는 길 잘 가시다가, 연못가에서 뭐 시커멓고 커다란 걸 본 것도 같고 못 본 것도 같은데, 뭐가 첨벙거린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은데, 갑자기 거기 쯤에서

꿔어어어어어어, 하고,

물 속에서 뭐가 이따만한게 꿔어어어어어어 하고, 막 꿔어어어어어어, 해서, 할아버지는 깜짝 놀라서, 아주 아주 깜짝 놀라서, 이거 참, 논두렁에 처박혀 허우적 허우적 하다 놀란 가슴이 멎어서 돌아가셨다고 한다.

이것 참, 이게 그 어디선가 황소개구리가 사람 잡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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